2007년 1월 4일 (목) 23:28 조선일보
[만물상] 반기문式 유엔 개혁
유엔 직원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여성들이 ‘유엔가족 권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전 남편들이 국제기구에 근무하며 누리는 특권을 이용해 모국 이혼법정의 생계비 지원 판결을 무시해버리는 일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이혼녀들은 이들의 연금과 급여에서 위자료와 양육비를 받아내려고 청원운동을 벌인다. 외교관과 달리 유엔 직원은 자기 나라 재판관할권에서 벗어나 있다. 국제기구 직원은 일차적으로 소속 기구에 충성할 의무를 갖는다.
▶‘노블메이어(Noblemaire) 원칙’이라는 게 있다. 유엔이 최고 인재를 고용할 수 있도록 임금이 세계 최고인 나라의 수준에 맞춰 급료를 주는 것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같은 일에 대해선 같은 보수를 지급한다. 그래서 후진국 출신일수록 만족도가 높다. 혜택도 많다. 집세의 40%를 보조받고 자녀교육비를 20년간 지원받는다. 자녀수당은 6명까지 받을 수 있다. 뉴욕 근무자들은 살인적 물가를 감안한 ‘물가보전수당’도 누린다.
▶요즘 서점 취업관련 서적코너에 가면 국제기구 진출 정보를 쉽게 볼 수 있다. 석사학위, 어학실력, 국제기구 인턴 경력이 있으면 유리하다고 한다. 유엔을 비롯해 41개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이 전문직 이상만 245명에 이르지만 앞으로도 진출 여지가 넓다.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을 부쩍 키운 이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지난해 어느 외국캠프에 참가할 고교생을 선발하는 최종면접에서 열 명 중 네 명의 장래희망이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반기문 효과’다.
▶반기문 총장이 한국식 근무방식을 도입해 ‘유엔 군기잡기’에 나섰다고 한다. 직원 출근시간 9시 30분보다 한 시간 반 먼저 출근한다. 8시부터 회의를 주재하니 직원들도 서둘러 나올 수밖에 없다. 예고 없이 1층 직원식당에 와 직원들과 함께 줄을 서고 식사도 함께 했다. 한국에 제도화돼 있는 재산공개제도도 도입할 예정이다. 정무직 직원들 재산을 유엔 웹사이트에 띄울 것이라고 한다. 직원들 입이 나오게도 생겼다.
▶키 큰 중학생 반기문이 교련시간에 기수(旗手)가 됐다. 훈련이 몇 시간씩 계속되자 아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반기문은 쉬겠다거나 다른 아이와 바꿔 달라고 하지 않았다. 탈진해 쓰러질 때까지 깃발을 들고 있다가 팔뼈를 다쳤다. 우직하도록 뚝심 있는 반기문이다. 방만한 조직운영과 부패 스캔들로 개혁요구에 직면한 유엔이 반기문 총장의 한국형 리더십으로 일신(一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강인선 논설위원 insu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