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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양성이씨

SangBokLee 2007. 9. 19. 21:42
 

제목: 평화광장 2006.12.26.화

양성이씨(陽城李氏) 

 양성이씨의 시조 이수광(李秀匡)은 중국 송나라 사람이다. 고려 문종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벼슬을 하고 양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양성을 본관으로 삼았다. 양성은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의 지명이다.

 이수광의 증손 이영주는 충열왕의 딸을 아내로 맞아 인척 관계를 맺으면서 가문의 기반을 다졌다. 그의 아들 이수방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인품과 재능이 왕의 눈에 띄어 벼슬과 함께 "나해(那海)"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수방의 네 아들 가운데 세 아들은 모두 시중에 올랐고, 한 아들은 상서를 지냈다. 사람들이 “나해같이 됐으면” 하는 뜻에서 "사나해(似那海)"라고 한 것이 "사나이(대장부)"란 말의 기원이 되었다. 

 세종 때 유명한 천문학자이자 발명가인 이순지도 양성이씨 가문을 빛냈다. 이수방의 고손인 그는 병조판서를 지낸 이맹상의 아들이다. 장영실과 함께 역법을 연구하고 앙부일구. 자격루. 간의. 규표. 천평. 현서 등을 만들었으며 천문학 서적도 편찬했다. 그는 산학(算學). 천문. 음양. 풍수 등 자연과학의 대가였다. 그 중에서 김담과 함께 쓴 "칠정산내외편(七政算內外篇)"은 유명하다.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을 도와 왜적을 물리친 이영남 장군도 양성이씨 인물이다. 그는 노량해전에서 33세의 나이로 충무공과 함께 산화했다. 이영남은 19세에 무과에 급제, 1592년 임란이 터질 당시에는 경상우수사 원균 휘하의 율포만호로 있었다. 그에 대한 충무공의 신임이 매우 두터워 난중일기에는 이영남 장군의 이름이 69번이나 등장한다.

 2000년 현재 44,402명이 있다. 주요파는 ▲일시중파 ▲이시중파 ▲삼시중파 ▲상서파 ▲한성윤파 ▲총제파 ▲판사파 ▲군사파 ▲소윤파 등이다.





출처 :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글쓴이 : 정복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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