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 삼천지교에 버금가는 가훈을 통한 <영재교육>: 강남대 이상복교수
양성을 본관으로 삼게 된 것은 이수광이 정난공신으로 책훈되고, 양성을 채읍(采邑)으로 하사받은 사패지지에서 연유된다. 시조의 유지(遺址)가 양성구내(陽城九內) 지금 향교의 곁이라고 하며, 묘소는 그 뒤쪽 몇리쯤 떨어져 있었다고 전해져 왔는데, 표지가 없어 실전했다. 양성은 고구려 때는 사복홀(沙伏忽), 신라 경덕왕 때는 적성(赤城), 고려초에 양성(陽城)으로 정한 지명으로 지금 현재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평택시 죽백동 일원에 있는 옛 지명이다. 따라서 양성이씨는 행정구역이 개편된 경기도 평택시 죽백동 산43의 3 유좌지원 양성이씨 세장산 시조묘역에 시조위 외 5위를 설단, 매년 음10월 1일에 세향을 받들어 오고 있다.
“북풍이 울부짓고 눈보라치는 겨울날, 너희들은 추위에 떨고 굶주리지나 않는지 걱정되어 한숨지누나. 망녕되게 좋지 못한 친구를 사귀면 끝내 이익됨이 없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한다면 도리어 해를 입는 법. 색은 반드시 몸을 망치니 모름지기 삼가야 하고, 말은 자칫하면 자기를 해치기 쉬우니 깊이 생각하여 말할지어다. 우리가 할 일은 충효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충효를 몸소 실천하면 그 명예 자연히 온 나라에 알게 되리.”
시조 상주국공(上柱國公) 6세손인 석탄공 수방(守邦)은 용의가 아름답고 마음이 그 용모와 같아 원나라 영종(英宗)황제로부터 나해(那海)라는 이름과 직성사인의 벼슬을 받고 귀국함에 고려 충숙왕은 융숭한 예우를 하여 광정대부 도첨의평리 판밀직사사 상호군에 오르게 했으며 또한 왕위 찬탈음모를 분쇄한 공으로 일등공신에 녹훈되었다.
석탄공은 네 아들을 두셨는데 모두 대현하여 장남 춘부(春富), 차남 인부(仁富), 3남 광부(光富)는 18, 19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모두 시중(侍中)이 되었으나 막내 원부(元富)만은 탈선하여 지내므로 어느날 아침 막내아들의 침실에 들어가 잠자고 있는 머리맡에다 위와 같은 계자시를 써놓아 크게 깨닫게 하여 21세에 장원 급제하고 상서(尙書)가 되게 하였으니 그 인자한 자손의 교육 방식이 맹모 삼천지교에 버금가는 교훈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대대손손 가훈으로 간직해 온 것이다.
@@이상복교수: <미국의 수월성교육> 집필자 (한국교육개발원 발간)
양성 이씨 군사파 27세 손<진천>
충북 괴산 생 (괴산 소수면)
음성 중학교 졸(26회)
청주 고등학교 졸(52회)
서울 사당동: 총신대학교 졸(신학 전공)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http://www.northwestern.edu) 대학원 뱍사학위(Ph.D.) 취득:
전액 성적 장학생
현, 강남대학교 교수(상담학)
개인 불로그: <영재교육> http://blog.daum.net/brainwork 운영 중....